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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31일 8:38 오전
기획역사 인물

역사 인물

고려 : 7대 목종, 게이의 슬픔

왕 송, 헌애왕후의 소생으로 경종의 유일한 아들이었으나, 경종이 사망했을 때 2살 남짓의 어린 아이에 불과하여 왕위를 잇지 못하였다.이러한 경우, 보통은 왕위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간주되어 압박과 설움 속에서 살기 쉬우나, 도덕군자 성종은...

고려 : 6대 성종, 고려를 완성하다

왕 치,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할머니 신정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영특하여 공부를 잘했고 도덕군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성장환경이 불우하여 일찍 철이 들었나 보다. ​981 년 경종의 양위를 받아, 충과 효를 국정의 모토로 삼았고, 아버지 왕욱을...

고려 : 5대 경종, 전시과를 만들다

왕 주, 광종의 맏아들이자 외아들이었다.광종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꼬투리만 잡히면 처형을 하였는데, 단순히 사람 죽이는 재미로 그런 것은 아니고, 연이은 참소에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게 되자,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차피 호족이고,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기는 매한가지였으므로 옥석구분 없이 없애버렸을 것이다.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었던 호족들은 왕의 교체를 생각하였을 것이고, 교체한다면 명분이 클수록 좋았을 것이므로,최고의 명분을 가지고 있던 비운의 왕태자들인 혜종의 아들과 정종의 아들이 주목을...

고려 : 4대 광종, 제 2의 건국

이름은 왕 소, 천둥에 놀라 죽었다고 기록된 친형의 뒤를 이어 949년 왕위에 올랐다.혼란스러웠던 이복형과 친형의 치세를 온몸으로 겪었던 광종은 형들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우선 나라의 안정에 주력하여 공신들의 표준 녹봉을 정하는 등 호족들을 다독였고, 성을 쌓아 북방의 위협에 대비하였다.필요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자신의 정치력 배양에도 힘쓰며, 이후의 정국을 구상하던 중, 951년 후주가 중원의 맹주로 부상하자, 그동안 사용해 오던 독자적인 연호를 버리고, 후주의 연호를 따르는 등 대중원외교를 강화하였다. 후주 또한 거란의 배후에 있는 고려의 지정학적 위치를 중시하였는지, 고려와 정식 외교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대하였다.후주와의 잦은 교류는 왕권 강화를 모색하고 있던 광종에게 영감을 주었고 인적 자원을 제공하였다. 953년에는 승려 겸신을 국사로 봉하여 화엄종을 왕실 종파로 만들었고, 부모를 위해 절을 지었으며, 균여대사의 성상융회 사상을 받아들였다.성상 융회는 화엄종과 법상종을 서로 합치자는 것인데, 두 종파의 교리상 미묘한 차이야 알 바 없으나, 개략적으로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라는 화엄원리는 언제든 전체주의적인 정치사상으로 변질이 가능하였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출발하고 세상은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법상종의 교리 또한 왕을 정점으로 하는 전제국가 건설에 걸림돌이 될 리 없었으므로,성상융회는 전제적 왕권을 꿈꾸는 광종의 입맛에 맞았을 뿐만 아니라,두 종파의 신봉자들인 중소호족들과 일반 백성들을 친왕파로 만드는 보너스도 기대할 수 있었으므로, 오매불망 왕권 강화를 원했던 광종에게 두 종파의 융합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이렇게 백성들의 정신세계까지 보살핀 왕은 제위보를 설치하여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구호하였다.그동안 전쟁과 잇따른 정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심신 모두를 다독인 셈이므로, 여기까지의 행적만 보면, 성군으로 칭송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 5년 정국을 안정시키고 민심을 다독이며 힘을 기르던 광종은, 956년 후주 출신 개혁가 쌍기와 그 동반 귀화인들을 전격적으로 등용하면서 본색을 드러내었다.쌍기의 진단은 '왕보다 힘이 쎈 이미 문벌화 된 귀족세력들이 만화의 근본'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으나, 그 처방만은 확실했다.쌍기는 문벌들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인 노예에 주목했고, 노비안검법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노비안검법은 전쟁으로 포로가 되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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